[37호] 니체의 적극적인 언어학 | 김상범(대학생)

기고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2 14:08
조회
593
니체의 적극적인 언어학

김상범(대학생)


1.
현대 언어학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소쉬르의 언어학은 기본적으로 청자의 언어학이다. 소쉬르가 말하는 '기표'는 '청각영상'이다. 물론 소쉬르는 청각영상의 심리적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마음속으로 시를 암송하는 것등을 그 특성을 보여주는 예라고 제시하고 있지만, 사실 이러한 행위는 '자신의 내면 목소리를 자신이 듣는' 행위이다.

또한 소쉬르는 음운론조차도 청각의 관점에서 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많은 음운학자들은 거의 전적으로 발성 행위, 즉 발성 기관이 산출하는 음성에만 몰두해 청각적인 측면을 무시합니다. 이 방법은 옳지 않습니다, 귀에 지각되는 인상은 발성기관의운동 영상만큼 직접적으로 주어질 뿐만 아니라 또한 모든 음운이론의 자연적 토대가 이 청각인상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음운 단위를 다루고자 할 때에는 청각자료가 이미 무의식적으로 존재합니다.1)

그리고 이러한 청자의 언어학은 청자의 관점에 서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비적극적이다. 이것은 자신이 화자이자 청자인 마음속으로 암송하는 행위의 경우에도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적극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없다. 반면 니체는 이러한 비적극적인 언어학이 아닌 적극적인 언어학을 제시한다. 이 언어학은 "말을 현실적 활동으로 다루는" 언어학이요, "화자의 관점에 서는"2) 언어학이다.

들뢰즈는 이러한 적극적인 언어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적극적 언어학은 말하는 자, 명명하는 자를 발견하려고 애썼다. 누가 그런 단어를 사용하는가? 우선 그는 그것을 누구에게 적용하는가? 그 자신에게, 듣는 누군가에게, 어떤 다른 것에게? 그리고 어떤 의도 속에서? 그런 단어를 말할 때 그는 무엇을 원하는가? 한 단어의 의미변화는 다른 누군가(다른 힘과 의지)가 다른 어떤 것을 원하기 때문에 그것을 독점하고,그것을 다른 것에 적용함을 의미한다."3)

여러 화자가 언어 기호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서 "누가"(또는 어떤 힘과 권력의지가) 그런 단어를 사용하고, 그것을 누구에게 적용하고, 그 단어를 말할 때 무엇을 원하느냐에 따라 각각의 화자가 말하는 언어기호의 의미는 달라진다.

여기서 모든 언어 사용이 적극적이지는 않다. 언어 사용의 적극성은 적극적인 힘이 그 단어를 사용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달려있다. 이렇게 적극적인 힘과 반응적인 힘을 포착하는 언어학을 들뢰즈는 니체의 적극적인 언어학이라고 부른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의 첫 번째 논문은 이러한 적극적인 언어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니체는 첫 번째 논문의 서두부분에서 공리주의자들의 오류를 비판하고 있는데, 그들에 의하면 <좋음>이라는 판단은 비이기적 행위를 받는 측에서 발생하여 비이기적 행위를 하는자와 그 행위에 적용된다고 한다. 이러한 판단은 타자의 비이기적인 행위에 대한 ‘반응’이다. 그러나 니체에 의하면 오히려 그 판단은 <좋은 인간들> 자신에게서, 즉 "고귀한 사람들, 강력한 사람들, 드높은 사람과 고매한 사람들에게서"4)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그 <좋음>이라는 단어를 ‘적극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무엇에 의해서? 바로 거리감(pathos of distance)에 의해서.

"이들은 모든 저급한 자, 비천한 자, 범속한 자, 천민적인 자들에 대비해서 자기 자신과 자신의 행위를 <좋음>으로, 말하자면 최상급의 것으로 느끼고 평가한다. 그들은 바로 이 거리감에서 비로소 가치를 창조하고, 거기에다 이름 붙이는 권리를 획득했던 것이다."5)

그리고 이렇게 이름 붙이는 권리는 권력의 표지이다. 이처럼 언어와 권력은 무관하지 않다.

"이름을 부여하는 지배자적 권리가 아주 멀리까지 뻗쳐서, 언어 자체의 기원을 지배자의 권력 표시로 간주하기에까지 이르렀다....(중략)...그들은 모든 사물과 사건을 한 마디 소리로써 봉하고, 그리하여 말하자면 그것을 점유해버린다."6)

<좋음>이라는 단어는 처음에는 귀족 계급에 의해 독점되어 귀족 계급 자신이나 귀족 계급의 특성이나 자기 자신의 행위를 뜻했다. 라틴어 bonus(좋은)는 귀족 계급으로서의 <전사>를 가리키는 말이었고, 독일어의 gut(좋은)는 지배적인 민족으로서의 고오트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다면 <좋음>이라는 단어의 다른 의미(즉, 善)는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그리고 이 다른 의미가 어떻게 지배적인 것으로 되어버렸을까? 이러한 변화는 성직자 계급과 전사 계급의 헤게모니 투쟁, 혹은 계급투쟁과 관련지어서 생각해야 한다. 언어기호의 의미를 규정하는 데에는 각 계급의 권력의지가 충돌한다.(왜냐하면 권력의지는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려는 의지이기 때문이다.)

성직자 계급은 애초에는 <순수>를 <좋음>으로, <불순>을 <나쁨>으로 규정했으나, 결국 그들의 가치 평가양식은 점차 "귀족적 평가양식에서 분리되어 마침내는 그것에 반대적인 것으로 발전"7)해 나갔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 평가 양식의 대립은 성직자 계급과 전사 계급의 대립이 심화될 때 더욱 강화되었다. 현실적인 힘에 있어서 성직자 계급은 무력했기 때문에, 전사 계급의 가치를 전도하는 일, 즉 "가장 정신적인 복수 행위"8)밖에 할 수 없었다. 그들은 강력하고, 고귀하고, 착취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악으로, 그리고 이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서 약하고, 병들고, 가난하고, 무력한 것을 선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가치평가는 <니체와 가치판단>이라는 꼭지에서 보듯이 적대적 타자에 대한 원한감정에서 비롯된 반응적 가치평가이고 이러한 가치창조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가치 창조가 아니다.

이러한 전도를 통해 성직자들과 약자들은 자신들이 약한 것을 공적(功績)으로 바꾸어 놓으려고 한다. 성직자들과 이에 의해 선동된 약자들에 의해 보복하지 않는 무력은 <선량>으로, 겁 많은 비열은 <겸허>로 둔갑하게 된다. 이렇게 <약함>이 <善>으로 둔갑하게 된다. 그들이 가장 깊은 증오의 이빨로 물고 늘어진 결과, 이러한 전도는 성공을 거두게 되고 성직자들은 헤게모니를 쥐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성직자들이 헤게모니를 쥐게 됨으로써 <좋음>이라는 단어의 지배적인 의미가 '선'으로 바뀌게 된다.

2.
니체의 이러한 언어학은 오늘날에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특히 기호의 의미가 완결된 기호체계 속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헤게모니 투쟁을 통해서 만들어 질 수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또 성직자들과 그에 의해 선동된 민중들에게서 보듯이,"화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자들, 즉 공적인 담론의 장에서 배제된 자들은 자발적으로 투쟁하지 못하고, '대표하는 자"의 조작의 대상으로 화하게 된다.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하는 권력의 질서도 극복해야 하지만, 말할 수 없는 자와 말할 수 있는 자를 구분하는 권력에도 맞서 싸워야 한다.

우리는 "화자"를 "말하는 주체"라고 부를 필요가 있을까? 사실 화자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힘과 권력의지가 그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말하는 주체'가 아니다.

1) 페르디낭 드 소쉬르, 김현권 옮김, <일반언어학 강의>,지식을 만드는 지식,pp79~80
2) 질 들뢰즈, 이경신 옮김,<니체와 철학>,민음사,2008,p.141
3) <니체와 철학>,p.142
4) 프리드리히 니체, 김태현 옯김,<도덕의 계보/이 사람을 보라>,청하,2011,p.33
5) <도덕의 계보>,p.33
6) <도덕의 계보>,p.33
7) <도덕의 계보>,p.40
8) <도덕의 계보>,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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