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호] 니체와 해석의 문제 | 김상범(대학생)

기고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2 17:34
조회
697
니체와 해석의 문제

김상범(대학생)


1.
니체가 객관적인 사실 혹은 객관적 실재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한 철학자라는 것은 확실하다. 니체는 "사실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해석이 있을 뿐"1)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니체는 객관적 사실에 대립하는 '주관적 해석'을 긍정하는 철학자인가?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해석하는 주체'라는 것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덧붙여-꾸며내진 것"2)이기 때문이다.

해석의 배후에 '해석하는 주체'로서의 해석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행위의 배후에 '행위-주체'로서의 행위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행위의 배후에 ‘행위-주체’로서의 행위자를 가정하는 것, 그리고 해석의 배후에 해석하는 주체'로서의 해석자를 가정하는 것은 해석, 그것도 그릇된 해석에 지나지 않으며 주어에 해당하는 것이 반드시 존재하리라는 "언어의 유혹"에 사로잡힌 해석이다. 또한 이런 식으로 판단하는 것은 약자의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민중이 번개를 그 섬광과 분리하여 섬광을 번개라고 불리우는 주체의 활동이며 작용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민중도덕도 또한 강한 것을 강한 것의 표출에서 분리하여 마치 강한 것을 나타내거나 나타내지 않거나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중성적인 기체가 강자의 배후에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3)

이러한 해석을 통해서 약자들은 강자들의 폭력 행사 등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게 된다. "너는 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결국에는 했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행위로부터 분리된 주체라는 미신을 믿음으로써 자신들의 약함이 선택되고 의도된 것이며 "하나의 공적(功績)인 것처럼"4) 해석하는 자기기만을 가능케 했다. 니체는 이러한 이유에서 문법적 착각으로부터 비롯된 주체라는 미신이 지상에서 큰 위력을 떨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종종 행위와 사건의 원인으로서 주체의 의식적 의도를 가정하곤 한다. 그러나 이런 인과성에 대한 믿음, 즉 원인을 의도로서, 결과를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니체에 의하면 이러한 믿음은 다르게 해석할 줄 모르는 "무능력"에서 비롯된다.

뿐만 아니라 니체는 인과율 자체에 대한 믿음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과율은 하나의 그릇된 해석에 불과하다.

"<원인>과 <결과>를 그릇되게 현실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 <원인>과 <결과>를 단지 순수 개념, 말하자면 이해를 쉽게 하고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만들어낸 인습적 허구로서 받아들여야지 사실의 규명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규칙성을 보여주는 어떤 사건이 일어난다. 어떤 특정한 사물이 항상 다른 특정한 사물을 뒤따라온다. 우리가 이것들을 인지하고 명명하려고 할 때, 우리는 그것들을 원인과 결과라고 명명한다. 우리 어리석은 자들은! 우리가 이 경우 어떠한 것을 파악했고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그러나 우리는 '원인과 결과'의 상(象)만을 보았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상이야말로 잇달아 일어나는 결합보다 더 본질적인 결합에 대한 통찰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다."5)

니체는 게다가 자연법칙조차도 하나의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자연법칙은 편리한 대로의 해석이지 원본은 아니다."6)

자연과학자들이 주장하는 "법칙 앞에서의 만인의 평등"은 대중의 민주주의적 본능에 영합하는 해석이라고 니체는 말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조차도 하나의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것은 깊이 생각해볼 문제이다.

2.
니체에 의하면 해석의 문제는 형이상학적인 문제이기 이전에 "유기체적 생명"의 문제이다.

"세계가 이러저러하게 보이고 느껴지고 해석됨으로써 유기체적 생명이 이 해석의 관점에서 유지된다."7)

그리고 이 유기체적 생명이 현 상태로 유지된다는 것, 혹은 존속된다는 것은 하나의 해석체계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과 동치이다.8) 이 해석체계는 여러 관점들에 의해 형성되며, 니체의 해석론은 (이러한 관점에 의한) '관점주의'라는 한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니체는 관점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사물을 관찰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오히려 사물에 대한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보다 많은 눈과, 색다른 눈들로 하여금 한 사물을 관찰하게끔 하면 할수록, 이 사물에 대한 우리의 <개념>, <우리의 객관성>은 보다 완벽하게 될 것이다."9)

그러나 이러한 객관성은 진리, 실재, 사실과는 무관한 객관성이다. 니체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세계는 틀렸다. 즉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빈약한 양의 관찰을 통해 지어낸 생각이고 다듬어놓은 것이다. 세계는 "흐르는 강 속에" 있다. 무엇인가 형성되는 것으로서, 거듭해서 새롭게 연기되는 거짓으로서. 이 거짓은 결코 진리에 다가가지 못한다:-왜냐하면 "진리"는 없기 때문이다."10)

"우리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세계", 즉 "이 세계"는 근본적으로 가상이라는 주장인데, 이것은 '진리의 세계'가 따로 있다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세계는 "빈약한 양의 관찰을 통해 지어낸 생각이고 다듬어 놓은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이 세계"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구성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 이것은 "내면적 힘은 무한히 우월하다."11)는, 즉 내면적 힘은 환경을 구성할 수 있다는 니체 자신의 주장을 통해서 뒷받침된다.

다시 해석의 문제로 돌아가서 이 주장들을 음미해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 한다: 세계는 해석을 통해 구성되는 것이지,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실","진리"."실재"에 도달할 수 없다.

해석체계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세계가 구성될 뿐만 아니라 주체도 구성된다. 하나의 "해석체계"가 성립된다는 것은 본능들 사이에 위계질서가 결정되고, 이를 통해 어떤 관점들이 지배적이게 되느냐가 결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들과 본능들의 위계질서는 주체를 구성한다.

모든 본능은 일종의 지배욕이며 모든 본능은 자신의 관점을 가지고 있다. 본능은 이 관점을 다른 본능들에 규범으로서 강요하려고 한다.12)

다시 객관성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니체가 말하는 "객관성"은 무엇일까? 그것은 객관적인 사실, 객관적인 진리에 도달하는 것은 아님을 위에서 설명했다. 니체가 말하는 '객관성'은 사물에 대한 자신의 해석의 틀을 끊임없이 넘어설수록 점점 더 풍부해지는 어떤 것이다. 즉 끊임없이 새로운 관점들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좀 더 넓은 해석의 지평을 열어가고 사물의 이면을 보게 됨으로써, 우리는 니체가 말하는 '객관성'을 더 높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새로운 관점들이 생기기 위해서는 새로운 본능들이 존재해야 하는데, 이것은 니체가 말하는 '본능'이 형성되고 만들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13) 이렇게 새로이 만들어지는 본능들에 의해 본능들의 위계질서는 일시적으로 탈구조화 되었다가 다시 재구조화된다. 그리고 이 본능의 위계질서의 변화는 주체와 해석체계를 동시에 변화시킨다.

인간은 이렇게 새로운 본능들을 체화시켜 다른 존재로 화함으로써 새로운 관점들을 형성하고 새로운 해석의 지평을 열어나갈 수 있다.

"모든 인간의 향상은 편협한 해석들의 극복을 수반"하며, "모든 도달한 강화와 권력 확장은 새로운 관점들을 열어 놓고 또 새로운 지평을 믿게"14)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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